나의 이웃동네 울산여행 이야기 2

조회 수 64 추천 수 0 2018.05.07 15:58:37
김선화 *.161.42.92
날짜 : 2018-05-07 

Ⅱ. 20세기 신(新) 철기문화의 시대를 열다.


1. 신(新) 철기문화의 시대

울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가 있는 곳이다.
‘철’ 하면 나는 항상 ‘가야’가 떠오른다. 잠시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1500여년 전, 지금의 경상남도 전체와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 ‘가야(伽倻)라는 나라가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가야‘는 김수로왕이 세웠고 부인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후로 전해진다. 허황후가 인도에서 배를 타고 먼 길을 오면서 오빠인 장유화상도 함께 왔는데, 장유화상으로부터 전해진 인도의 정통 불교 흔적들이 금관가야를 역사로 가진 김해와 인근 지역에 있다고 한다. 가야의 왕권 계승에는 특별함이 있다. 김수로왕은 아홉 왕자를 두었는데 이 중 여덟 왕자가 출가를 하고 가야의 왕권은 출가하지 않은 왕자에 의해 이어지게 된다. 이 후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피비린내 나는 왕권다툼을 본다면 왕권다툼의 원인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보더라도 매우 민주적인 절차로 권력을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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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500 여년 동안 지속하다가 고구려, 백제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되어 결국은 신라에 합병되고 말았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학자들은 가야가 멸망한 가장 큰 이유를 강력한 국왕의 권력을 바탕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고대국가가 되지 못한 것을 든다. 가야는 연맹국가로 지내다가 멸망하였다. 연맹국가란 철기 문화의 보급으로 증대된 생산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여러 소국들이 그중 우세한 집단의 족장을 왕으로 하는 왕국으로 이 중 가장 세력이 강한 부족의 군장이 연맹의 대표자인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왕은 다른 부족에 대한 지배권을 갖지 못하였으며 왕과 부족장(군장)이 권력을 공유하는 형태의 초기 국가형태이다.


찾으려 했음에도 기록이 별로 없는 가야에 흠씬 빠진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왕권계승 방식의 특별함 때문이었다. 지금도 군주국이라면 세습왕권이 보편적이고 가끔은 왕권을 위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때 벌써 왕의 소임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왕자에게 왕권을 승계하고 나머지 왕자들은 모두 출가의 방식으로 왕권에서 제외시켜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원인 조차 없애버린 방식에 진정 깜짝 놀라며 경이로워 하였었다. 그러나 이렇게 앞선 왕국이 왜 연맹국가 체제에 머물고 더 나아가지 못하며 허물어졌는지, 안타까웠고 그 안타까움은 의문이 되어 항상 복잡한 내 머릿 속 한 귀퉁이를 맴돌고 있었다. 이제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이웃동네 방문으로 곱씹은 역사와 나의 상상을 섞어 풀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교의 정신이 아닌가 싶다. 가야인들은 핏줄이나 지연(地緣)이 아니라 가장 잘 하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 합리적인 통치이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충실하였다. 많음을 만들려고 힘을 키우지도 않았고, 자리 잡고 사는 터전에서 나오는 생산물로 배를 불리고 서로 나누며 살았다. 힘의 논리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 눈으로 보면 분명 강한 부족도 있었겠지만 정복과 약탈로 힘을 키울 필요와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시작한 그들의 건국이념이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어느 덧 가야인의 몸속에 DNA로 굳어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불교 정신‘이라 하면 항상 하얘지는 머릿 속을 문자로 드러내자면 평등과 평화. 잘 하는 사람이 소임을 맡고 각자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여 열심히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삶. 청동기문화부터 생기기 시작한 사유재산의 차이와 이어지는 철기문화에서 생긴 힘의 불균형은 정복과 약탈, 복종을 낳았지만 주변국과는 다른 가야인의 삶에 대한 가치와 기준이 그 시절의 주변국과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역사가 말하는, 힘을 키우지 못한 것은 가야인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였을 수 있었다. 가야는 철을 제련하는 기술이 있었으므로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님은 증명된다. 너무 많이 앞서서 사람중심의 세상. 평등과 평화를 지향했던 가야인은 21세기에 와서야 그 가치가 인정되는 이념으로는 6세기를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가야멸망의 진짜 이유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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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년이나 존재하였음에도 제대로 된 문헌조차 전해오지 못하는 것은 이 또한 굳이 뭘 만들고 기록하여 알리고 들어 올릴 필요가 없었던 가야인의 가치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야 멸망에 대한 의문을 난 이렇게 내 식으로 풀어보았다. 이웃동네 방문을 계기로...


울산 이야기를 하면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가야사’ 를 언급한 것은 가야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철기문화를 시작했다는 사실과 울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라는 내 나름으로 짝 지은 연관성을 털어놓기 위함이다. 그 당시 철을 다루는 기술은 지금의 4차 산업, 미래의 우리를 먹여 살릴 기술, 인공지능에 버금가는 최첨단의 기술이었다. 가야지역은 질 좋은 철광석이 많이 생산되고 양호한 수상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낙동강 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철을 생산하고 철기를 제작하는 기술은 곧 청동기를 사용하는 다른 고대국가들에 비해 우월한 힘을 가졌음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약 1500년이 지난 후 여기 울산에서 자동차와 조선업으로 20세기의 기술이 첨가된 새로운 철기문화가 꽃피우게 되었다.


2. 울산큰애기의 눈물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 애기
상냥하고 복스런 울산 큰 애기
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울산큰애기라는 노래의 앞 부분이다.


멜로디는 경쾌한 이 노래는 울산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대도시로 나가야 했던 당시의 사회상황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이다. 오랜 세월동안 농업과 어업으로 생활한 울산은 2차 산업이 주류가 된 시대에는 더 이상의 풍요를 기대할 수 없었고 젊은 청춘남녀들은 도시로 나가 돈벌이를 해야 했다. 이 노래는 그 때의 애환을 담고 있는데 울산이 번영을 누리기 전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


3. 쇠- 인간의 생활과 문화를 바꾸다.

20세기가 끝을 맺을 무렵 여러 언론매체에서는 ‘20세기를 변화시킨 발명품은 무엇일까?’ 라는 주제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언급하였다. 조사한 매체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여러 조사기관에서 공통되게 선정된 것 중에 자동차와 배(船)가 있다. 19세기에 발명된 자동차는 사람의 생활 반경을 크게 넓히고 또한 경제도 크게 활성화시켰다는 이유이고, 배(船)는 인류의 활동범위가 단순히 대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높이 사 20세기를 넘어 인류의 주요발명품 중의 하나로 꼽혔다. 더구나 내가 찾은 글에는 최초의 배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의 잔해가 우리나라 김해에서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 또한 고대 국가부터 이어진 우리의 발전된 기술문화인 듯 하고,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어 깜짝 놀랐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빛나는 역사와 기술력을 가진 민족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 공업탑을 돌아 공업단지로 들어가면 회색의 거대한 공장들과 거기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배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다. 또 출고되어 주인을 기다리는 자동차가 넓은 공장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고 선적을 기다리며 부두에 대기하고 있는 광경은 울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면 한참 동안 이어지며 저만치에서 보이는 공장들은 그 단조로운 회색 때문에 우울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라는 울산이 한국경제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그래도 회색의 우울이 싫다면 야경을 보면 달라질 것이다. 까만 밤을 밝히는, 낮보다 환한 불빛에 우울은 어느 새 달아나고 가라앉은 기분은 금방 ‘반짝반짝’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화려함에 매료된 찬탄과 함께 이곳의 공장들이 주로 1차 산업으로 버티던 우리 경제에 힘찬 성장의 동력을 제공하고 아울러 급속한 경제발전과 국민 생활수준 향상에 끼친 영향을 알게 되면 실로 놀라고 고마울 것이다.


Ⅲ. 진정한 풍요를 위해 자연과의 공존을 꿈꾸다.

시외버스를 타고 울산을 갈 때마다 그 버스는 늘 공업탑을 돌아가곤 했다. 울산이라는 공업도시가 주는 이미지보다는 다소 소박한 느낌의 공업탑은 나에게 ‘울산’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이다. 울산공업센터가 세워지고 울산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1967년에 세워진 공업탑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고 한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 나가는 그날엔 국가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빈곤을 퇴치하고 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함이 무엇보다 급하였던 시절이라 이해는 하지만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 가는 것이 경제발전의 증거라는 단순한 논리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연보호’, ‘환경오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의 우리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환경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한반도의 산업수도라 불리는 울산 근처에 온산공단이 있다. 온산공단은 우리나라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여름에는 빨래도 널지 못하고 장독도 못 열고 심지어 숨쉬기도 힘들어 천식 같은 호흡기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불과 10년 전까지 만 해도 비가 오면 강물은 공장의 폐수와 공업용 찌꺼기로 붉은 색이었고 택시기사들은 손님이 온산공단으로 가자고 하면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그런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그저 울산에 사는 것이 죄라면 죄라고 감내하고 살았다고 하였다.


이제는 그 온산공단이 울산 미포공업단지와 연계하여 자연순환형 생태순환단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생태환경단지로 태화강의 십리대밭이 있다. 말 그대로 십리대밭은 태화강을 따라 긴 대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많은 울산시민들이 태화강변과 대밭을 따라 운동 삼아 걷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나무 밭을 걸으니 ‘사사삭, 스사삭’ 대나무 특유의 맑은 기운을 품은 바람이 대잎을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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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를 들으니 마치 중국 무술영화에 나오는 칼 잘 쓰는 검객들이 날렵한 몸으로 대밭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울산시민과 관공서의 노력으로 이제 태화강에 물고기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만큼 물이 깨끗해졌다는 뜻이고 물고기가 돌아온 만큼 사람이 살기도 좋아진 환경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대왕암의 철썩이는 기운 넘치는 바다의 파도는 답답한 가슴을 ‘펑’ 뚫어주는 청량제가 되었고 맑고 아름다운 간절곶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해가 뜨는 곳으로 새해가 되면 해맞이를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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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이는 파도, 파도와 시간이 만들어낸 기암괴석들, 차갑고 단단한 쇠가 인간의 기술과 문화와 만나 이룬 새로운 철기문화,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한 경이롭고 귀중한 유적, 이 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창출하는 울산은 다채로운 삶의 휴식공간이자 새로운 영감(靈感)을 주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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