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웃동네 울산여행 이야기 1

조회 수 56 추천 수 0 2018.04.30 15:00:57
김선화 *.174.145.116
날짜 : 2018-04-30 


Ⅰ. 한반도의 울산에는 고래가 있다.

고래에 대한 내 기억은 솔직히 별로 입맛에 맞지 않았던 시장통의 좌판에서 팔던 고래고기다. 어렸을 적 엄마 따라 시장을 가면 고래고기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지금부터 50년도 더 전(前)인 당시에 안경을 끼고  50대 후반 정도였던 그 아주머니는 연탄불 위에 넓은 주물프라이팬을 놓고 손님이 달라는 만큼 양념된 고래 고기를 덜어 볶아 주었는데 손님은 포장을 해 가거나 프라이팬 옆의 낮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먹었다.


아마 그 때는 고래가 뭔지도 모를 만큼 나는 어렸고, 그저 생소한 먹거리라 호기심 반으로 사 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입에는 맞지 않을 거 란 것을 아신 엄마가 한 점 정도만 사서 우선 먹어보라고 하셨던 것 같다. 엄마 예상대로 고래 고기의 맛은 먹성이 좋았던 어린 내 입에도 맞지 않았다. 그 후에는 더 이상 고래고기를 사달라고 엄마를 조르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내게 고래는 ‘무섭도록 엄청나게 커다란 물고기’라기 보다 시장좌판의 음식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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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과 함께 몸과 마음이 자라 20대의 어느 날, TV 뉴스로 고래를 만났다. 세계가 동참하는 고래 보호 운동과 이미 고착된 국민들의 식성(食性) 때문에 여전히 고래를 잡는 나라가 서로 대립하여 외교 분쟁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새삼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래는 인간과 같은 종인 포유류로 물고기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허파호흡을 하여 주기적으로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쉬며, 알이 아닌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워 자식과의 유대가 깊어 일반 물고기로 취급하기에는 너무 인간과 닮은 점이 많다.


알려진 바와 같이 고래는 두뇌도 크고 잘 발달하여 혹등고래는 몇 달에 걸쳐 복잡한 노래를 만들고 여러 마리가 공기 방울 그물을 만들어 생선을 사냥하기도 한단다. 비교적 고등동물이라는 이유와 포획방법이 잔인하여 먹거리로는 부당하다는 연구가 있어 몇몇 나라를 제외한 세계 여러 나라들이 고래보호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도 고래보호에 함께 협력하지만 오래 전부터 고래를 잡았는데 그 곳이 울산 장생포 바닷가였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다. 


1.고래를 찾아서

우리나라 앞바다, 게다가 이웃동네 울산의 바다에서 고래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집채만 한 몸뚱이로 푸른 바닷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다가 유선형의 몸을 매끄럽게 휘감아 날렵하게 물속으로 들어가는 놀라운 광경이 실제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신선한 충격이고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그런 기대를 안고 찾아간 장생포 박물관 앞에는 고래유람선이 있는데 유람선을 타고 나가면 열 번에 두 번 정도는 정말 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한번 나가도 볼 수 있겠고, 꼭 보고 싶은 사람은 여러 번 나가면 아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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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나타난 시대는 짐작도 못하게 까마득한 선사시대부터다. 반구대 암각화와 주변의 여러 유적을 통해 보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미 고래를 잡았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몇 천 년, 몇 만 년의 시공(時空)이 화살처럼 지나가며 마치 나도 그들과 고래를 잡고, 잡은 날은 함께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며 축제에 참여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에서 글로만 만날 수 있는 세상, 현실이 아닌 머나먼 저편, 지식의 세계로만 치부(恥部)하고, 외우는 데만 의미를 두었던 ‘석기시대’였는데 어마어마하게도 그 인류역사의 한 페이지가 이곳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때 사람들은 부락을 이루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짓고 고래라는 큰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었던 그 자취가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2. 반구대 암각화 가는 길

반구대 암각화는 1970년대 초, 울주 지역의 불교유적을 조사하던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이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반고사 터를 찾기 위해 반구대를 방문하였는데 이때 마을 주민의 제보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암각화가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돌의 표면에 의도적으로 단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긋기, 갈기, 돌려 파기 등의 방법으로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다양한 고래, 해양생물, 육지동물, 인물상 등이 300여점 새겨져 있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약 7000년에서 3500년 전인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반구대 암각화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인간이 바다에서 처음으로 고래를 사냥한 시기를 10~11세기로 추정하였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이보다 수천 년이나 앞선 유적이므로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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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고 대단하다. 엄청나고 엄청나다. 그동안 교과서나 신문, 잡지, 인터넷 등의 기록을 보면서 한반도에는 인류의 역사를 증명할 아무런 흔적이 없어 우리는 늘 한산한 외각이었다 여겼는데 인류가 고래를 잡았던 시기를 밝혀주는 유적이 우리나라, 게다가 이웃 동네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새롭고 뿌듯하였다.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가는 길은 이런 곳에 무슨 문화재가 있을까 싶게 좁은 산길을 차를 타고 가다가 그나마 내려서 다시 20분 이상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길 중간 중간마다 눈여겨 볼만한 여러 유적이 곳곳에 있어 잠깐이라도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언양 유생들이 세운 반고(반구)서원, 울주 대곡리 연로 개수기 등이 있었고 너른 바위에는 약 1억년 전, 전기 백악기 시대의 초식공룡의 발자국 화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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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뿐 아니라 태화강의 지류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는 대곡천의 양 옆은 그 쌓인 모양이 특이하고 울퉁불퉁한 퇴적암이 펼쳐져 있었고 겨울길이라 나무도 잎도 말라버린 길과 언제 그랬는지 쓰러진 채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는 나무와 마른 풀이 뒤덮인 땅은 마치 지금이 그 시절 인듯한 착각이 들게 하였다. 나는 인간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원시의 모습, 신석기 시대 사람이 살았던 곳과 그들이 걸었던 길을 가는 기분을 고스란히 느끼며, 마치 어디선가 불쑥 원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나타날 것 같은 긴장감으로 마치 비밀스러운 장소를 찾아 가는 호기심 가득한 탐험가처럼 발걸음도 사뿐사뿐 조심스럽게 걸었다.


반구대암각화 길을 걸으며 곳곳에서 나타나는 여러 유적은 내내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나중에는 먼 곳의 남의 것만 찾으며 이리저리 나돌다가 이제야 내 것의 진가(眞價)를 알게 된 미안함이 자꾸 내 몸 어딘가를 쿡쿡 찔렀다. 우리 동네의 이웃동네에는 억겁의 시간 전, 백악기에는 공룡이 뛰어 다녔고, 글자가 없던 선사시대에는 이미 사람들이 부락을 형성하여 조직생활을 하며 함께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았다. 그 세월은 글로 증명되는 역사시대로 이어지며 더 넓고 더 편리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나아간 시간이었고 인간의 삶과 함께 이어진 기나긴 인류 역사가 무늬져 녹아있는 거룩한 땅이었다.

 

3. 석기시대 사람들, 고래를 잡다.

고래, 그물, 사슴, 맷돼지 등이 새겨진 암각화와 고래를 유인하여 왔을 대곡천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 멀리에서 아득한 함성소리와 영화와 같은 장면들이 머리를 스쳤다.


‘와아, 와야’

곡식과 풀, 열매만으로는 항상 부족한 우리는 늘 먹을 것을 원한다. 그나마 작은 짐승이라도 잡히는 날은 다행이지만 그 또한 부족 모두의 배를 채우기는 부족하다. 오늘은 계속 허탕만 친 산을 벗어나 바다로 나갔다. 오늘은 제발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작살과 그물을 싣은 배를 타고 천천히 바다로 나아갔다. 햇살이 내리 쬐는 바다는 물결도 잔잔하여 물고기를 잡기는 적당하다.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물결이 일어나는 모양이 심상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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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다. 고래가 나타났다.’ 정말 오래간만이라 우리 모두는 들떴고 가까이 다가가 고래를 향해 일제히 작살과 그물을 던졌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미 강 쪽으로 고래를 몰며 뒤를 쫓았다. 이제부터는 녀석과 우리의 힘겨루기이다. 쫓기는 고래는 점차 공포에 질리며 숨이 가빠지면서 눈에 띄게 지쳐간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힘이 세고 작살을 정확하게 던지기로 유명한 친구 녀석이 던진 작살이 이놈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사실 파도 위에, 배 위에 선 우리가 이렇게 커다란 짐승을 작살로 맞추는 것은 여간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더구나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고래와 배와의 거리가 있으니 힘도 좋아야 고래가 있는 곳까지 작살을 날릴 수 있다. 아무튼 기운이 빠진 고래를 보니 갑자기 힘이 솟았고 옆을 보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는 최대한 가까이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많이 떨어져서 좀 더 빠르게 몰았고 녀석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땅과 가까운 곳까지 밀고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숨이 끊어진 듯 한 고래를 마을의 남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땅 위에 끌어 올렸다. 완전히 숨이 끊어지면 자르고 잘라 우리는 그동안의 주린 배를 채울 것이다. 배부른 기쁨과 천지신명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며 내지르는 함성이 수천년의 시간을 너머 내 귓가를 울리며 심장을 두드렸다.


아무 것도 못하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이미 바다에 사는 고래를 잡기 위해 고래보다는 인간에게 더 편하고 유리한 태화강 지류로 고래를 몰아 잡을 수 있었다. 나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센 동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생존본능에서 시작한 고민은 인류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삶의 지혜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유리한 쪽으로 상대를 몰아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 실패를 거듭하고 목숨도 잃으며 직접 몸으로 부딪혀 터득한 치열한 생존의 전략이 쌓여 인간 개개인의 고정관념이 되었고 살기위한 몸부림은 다른 생명의 목숨도 뺏어야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겪어야 했을 것이다. 현대인의 전략과 지혜라 하는 것이 결국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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